* 초반에만 힘을 잔뜩 준 바람 빠진 영매(靈媒) AU.



절대로 그들을 의식하면 안 돼. 몇 번이고 같은 말만을 중얼거리며 텅 빈 거리 한복판을 정신 없이 달리던 모모는 이제 가빠지다 못해 아릿하게 매운 감각을 자아내기 시작한 제 숨을 아무렇게나 내쉬어 보았다. 폐가 발광하며 제 몸을 비트는 것이 선명하게도 느껴졌다.


무언가 마실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머릿속에 떠올리던 모모는, 약간의 시간이 지나 손바닥에 가득 배어 있던 땀이 바람에 말라가기 시작했음에도 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선을 한치라도 돌리면 여느 때처럼 무언가가 눈앞에 튀어나올까 무서웠다. 군데군데가 으깨지고 녹아내려 말을 걸기는커녕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는 피투성이의…그런 것들. 그녀는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레 뇌리를 선명하게 채운 기억 탓에 미간을 찌푸렸다. 등 뒤에서 뻗쳐진 손에 거의 스칠 뻔했던 순간 느꼈던 오한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모모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의 눈시울이 미적지근해질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었던 이형의 것들을 거의 완벽한 형태로 기억하고 있었다. 개중에서는 본능적으로 다가가기를 꺼릴 만큼 일그러진 것도 있는가 하면, 아주 평범하고 친절한 것들도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의 반응을 보일 때마다-아주 작은 것이어도 괜찮았다-그것들은 가까이 다가왔고, 이따금씩 그것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라고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유독 안색이 파리했던 아이와 함께 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까지 쌓고 있던 모래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일, 무언가에 이끌려 하늘에 여명이 펼쳐지기 직전까지 산 속에서 길을 잃어 울었던 일과 그림자에 가려져있었지만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의 날 선 시선까지, 그녀가 잊어버린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보았던 조금 기묘한 사람의 형체들이 모두 세간에서 ‘요물’이라 흔히 일컫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모모는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계절이 변화를 거듭할 때마다 형체들은 점점 기괴해졌다. 그녀가 그것들을 본격적으로 무시하고, 피하기 시작한 것은 꽤나 최근의 일이었다. 등 뒤의 손아귀에 붙잡히면 어떻게 될지를 속으로 상상할 때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내리 저었다.


“진짜 사람이 못 할 일이야, 이거. 단순히 심부름으로 나왔을 뿐인데 이상한 것들에게 쫓기기나 하고...”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두부 한 모가 든 봉지를 눈높이까지 들어 응시하던 모모는 땀에 축축하게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대충 떼어내고 한 번의 깊은 심호흡을 한 뒤 느릿하게 제 몸을 폈다. 구름 사이에 가려져 듬성듬성 드러난 달은 안개에 휩싸여 일그러진 만월이었고, 그 주위를 둘러싼 달빛마저 희미하고도 차가운 느낌의 은색을 머금고 있었다. 사방의 분위기가 퍽 불길했다.


아득할 정도로 넓게 펼쳐진 하늘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려 조심스럽게 제 주위를 살펴보던 모모는 문득 제 숨을 삼켰다. 높고 두껍게 자라 짙은 이끼가 뒤덮인 신목. 건드리면 무너질 듯 을씨년스러운 사당-옅게 나무 썩는 내가 났다-. 눈에 익은 주변의 풍경이나 상황으로 보아, 그녀는 분명 집에서 꽤나 떨어진 신사에 당도해 있는 듯했다. 오래 전부터 인적이 닿지 않고 있던 낡은 건물과 그 부지의 둘레를 감싸고 있는 흰 새끼줄. 자신이 그것을 일찌감치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녀의 표정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비틀어졌다.


뭐야, 너. 모모가 제자리에서 당황스럽게 발을 움직이다 신사 밖으로 막 달려나가려는 순간 사람의 것이라 짐작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정도로 탁하고 낮은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고, 그녀는 그대로 한참을 얼어붙어 있다가 제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은 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외로 꼬았다. 일렁이는 눈동자에는 여전히 불안이 서려 있었다.


모모의 눈에 닿은 것은 전체적으로 새카만 분위기의 청년이었다. 켕기는 구석이 잔뜩 있다는 듯 불만스러운 표정과 단단히 낀 팔짱으로 보아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그녀는 어렴풋이 생각하며 눈앞의 형체를 빤히 쳐다보았다. 분위기보다도 강하게 그녀의 시선을 끈 것은 그의 이질적인 겉모습이었다. 먼지의 자취가 남은 고서에나 실려있을 법한 과거의 복식, 탁한 광채를 띤 황색의 눈동자. 무엇보다도 그는 지면을 떠나 한 뼘 정도의 높이에 부유해 있었다.


여태껏 봐 왔던 형체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듯한 그의 모습을 계속 뜯어보던 모모는 혹시 뭐 유령이라던가 요괴라던가 그런 분이신가요. 라는 질문을 막 꺼내려다가 자신의 말보다 한 박자 먼저 들려온 목소리 탓에 반쯤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너, 역시 「빼앗는」 녀석이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의 존재를 의심하듯 에, 하는 얼빠진 신음을 낸 모모는 일순 눈앞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느끼자마자 신사의 경내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는 자신의 위치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먼발치에는 여전히 눅눅하게 빛이 바랜 신사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 희끄무레한 인영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 듯싶었다. 꿈은 아니었다.


그 저주받은 체질 고치고 싶으면 내일 다시 와. 지금은 안 돼.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목소리의 틈새에서 어째서인지 살기 비슷한 것을 감지한 모모는 엉거주춤, 신사를 바라보다가 집의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무엇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 탓에 가슴 한구석이 텁텁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뱀신…님이 한참 먼 과거부터 저랑 비슷한 능력을 떠안은 사람들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인가요.”

뭐 그렇지. 모모는 저의 말에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 손에 들려있던 우롱차 캔을 입에 가져다 댄 그를 어지간히도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침의 신사는 의외로 밤에 보였던 것만큼 크게 뒤틀려있지 않았고, 그녀는 그 사실에 내심 안도하며 지극히 일관적인 풍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다못해 이젠 신 노릇까지 해야 세계가 돌아간다니 기구하네. 모모는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던 혼잣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굳이 무언가를 질문하지 않았다. 현실과 분리된 채 당연하지 않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광기가 온 사방을 잠식하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은 아무리 해도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난 거지만, 계속 뱀신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그런 것 같은데요… 쿠로하는 돌연 제 편으로 고개를 돌린 모모가 어설픈 기색으로 꺼낸 말에 엷은 코웃음을 치다 호칭 같은 거 네 맘대로 하던가. 라는 말을 기류 속에 대충 흘렸다.


“음, 뱀신님은 온통 새카만 색이니까…‘쿠로하’라는 이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

모모의 말이 끝나자마자 잔뜩 날이 서 이지러진 무표정을 한 채 그녀를 지긋하게 바라보던 쿠로하는 천천히 날숨을 쉬다가 대답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양 저의 눈동자만을 굴렸다. 그가 앞으로 입 밖으로 낼 목소리는 약간의 동요와 혼란 탓에 분명히 갈라질 터였고, 그는 그 사실이 못 견디게 같잖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더라도 기억의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아까 말한 대로 네 증상 고쳐주는 대신 나중에 너도 내 일 하나 돕는 거다. 계단의 끄트머리에 등을 기대며 쿠로하가 꺼낸 말에 모모는 고개를 끄덕였고-꽤나 열성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양새를 곁눈질로 쳐다보던 그는 얼핏 탄식처럼도 느껴지는 짧은 숨을 토해내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도통 짐작 가는 구석이 없으니…역시 평소처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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