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소재 有

*날조 및 급전개 다수



하카제 카오루는 저의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목구멍 너머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물의 감촉과 서늘함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떠올려보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정작 그의 머릿속에 자리한 것은 자신의 시야가 검어진 이후로부터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를 추측하는 잡념뿐이었다. 그는 줄곧 감고 있던 눈을 그대로 뜨지 않은 채 손바닥을 움직여 햇빛의 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느껴지는 것은 식은 모래의 감촉이었다. 해의 조각은 이미 수평선 너머로 사려지려 하고 있는 듯했다.


물이라도 들어찬 양 강하게 느껴지는 폐부의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리며, 카오루는 재차 희미한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하릴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해안가에 도착해 있었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의 물결을 향해 한 걸음을 뻗자마자 갑작스럽게 일어난 파도가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의 뇌리에 남은 기억들은 단지 단편적인 조각 같은 것들뿐이었다.


규칙적으로 쉬고 있던 숨 너머에 고여 있던 이질적인 기류를 뱉어 낸 카오루는 –여전히 지워진 기억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채-슬며시 제 눈을 떠 보았다. 그의 시야에 온통 들어찬 것은 쪽빛을 머금기 시작한 하늘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사람의 형상에, 그는 흐릿한 제 눈의 초점을 맞추려 눈살을 찌푸려 보았다.


여름날의 얕은 바다를 꼭 닮은 연한 푸른색의 머리칼,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표정, 그리고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 법한 형식과 색채의 옷. 무엇보다도 카오루의 시선을 끈 것은 그가 눈을 뜨자마자 마주했던 맑은 눈동자였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녹색의 물기 어린 눈동자 너머를, 그가 한참 동안 응시하다 정신을 차린 것은 꽤나 나중의 일이었다. 묘하고도 빼어난 그 얼굴이 자신을 줄곧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상기하자마자 빠르게 몸을 일으켰던 그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움직인 탓에 균형을 잃은 눈 앞의 아이가 허공으로 뻗은 손을 무심코 움켰다.


줄곧 쪼그려 앉아 있던 아이가 저의 손에 이끌려 바로 선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는 문득 전에 없던 웃음을 짓는 것에 순간 마시고 있던 숨을 멈춘 카오루는 모래가 뒤덮인 손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키가 저보다 컸다는 것을 겨우 깨달은 그는 미미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느긋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귓전에 닿음과 동시에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어딘가 「다친」곳은 없나요?


공기 중을 잠시 떠다니던 목소리의 잔물결이 사라지자마자 물음에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인 카오루는 재차 저의 앞에 선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옷이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흠뻑 젖은 것을 알아채었다. 그는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 하늘의 채색이 생각보다 더 어두워졌다는 사실에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리만을 맴도는 어설픈 발걸음을 몇 번씩 옮기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맑은 눈동자가 자리한 방향으로 돌려졌다. 매 순간마다 시간이 일그러져 멋대로 뒤엉키고 있다는 생각 탓에 초조해졌다.


“저기, 지금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혹시 나를 구해준 거라면 정말로 고마워. 저-기 산 중턱에 있는 신사가 우리 집이니까, 다음에 와 줄래?”

어떻게든 보답할게, 라는 말을 낮은 어조로 덧붙이며 대답을 기다릴 틈도 없이 허둥지둥 모래사장을 박차기 시작한 카오루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아이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에 비가 내리지 않은 지도 어언 열흘이 다 지나갈 무렵, 차가운 마루에 누운 채 몸을 좌우로 굴리던 카오루는 대자로 누워 매정하게도 푸르기 그지없는 하늘을 응시했다. 나무에 붙은 매미의 울부짖음이 더위를 돋구는 듯했다.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쩌지, 꽤나 걱정이네…”

흘러가는 뜬구름처럼 덧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카오루는 목덜미 근처가 싸한 느낌에 다시 옆으로 몸을 세워 돌아누웠다. 그의 이마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식은땀이 끈적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저의 주변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로 가득 차 소란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저 혼자만 그곳에서 한 겹으로 격리되어 진공 상태에 빠진 듯한 감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 빠졌다가 돌아와서 잔뜩 혼났던 것도 딱 열흘 전이었는데. 서서히 그림자를 비치기 시작한 가뭄과 자신이 겪은 일 사이의 연관성을 추측해 보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 빠진 실소를 내뱉었다. 뭐, 그래 봤자 신님의 장난이라던가. 그런 거겠지.


저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내리친 듯한 천둥소리에, 흠칫 몸을 곤두세웠던 카오루는 느긋하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쨍 하게 맑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물들어 굵은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처마 아래로 팔을 내밀어 제 피부에 바로 닿는 물의 차가운 감촉에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신사의 먼 아래쪽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햇살을 뒤덮은 구름의 덩어리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카오루의 시선은 곧 다시 정면으로 향했고, 그와 동시에 그는 제 눈앞 아주 가까이에 비친 사람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허공에 부유해 있는 양 이질적인 자세로 몸을 한 바퀴 돌려, 자신을 거꾸로 직시하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에 선명한 기시감을 느낄 새도 없이 저의 시야가 의지에 상관없이 흐릿해지는 것을 깨달은 카오루는 서서히 자신의 등이 바닥으로 낙하하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어렴풋한 목소리가 그의 잠긴 뇌리로 파고들었다.


“어라…벌써 들켜버린 건가요?”


*


“심해의 성(性)을 가진 해신. 억겁 전 맺은 계약에 따라 현재까지 하카제 신사의 유일신으로서 모셔지고 있다. 신명(神名)인 ‘카나타’는 1대 신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계약 이후 신의 대가 바뀌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너덜해진 두루마리를 펼쳐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본 후에야 확신이 생겼다는 듯 다시 그것을 원래대로 정리하기 시작한 카오루는 제 앞에 앉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이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바깥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대뜸 의식을 잃었던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우리 가문에서 모시는 해신의 이름이 분명 「신카이 카나타」였어. 분명 제대로 외우고 있었을 텐데, 왜 기억이 안 났던 걸까…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독백도 아닌 모호한 정도의 말을 입 밖으로 낸 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카나타를 덩달아 응시하다가 숨을 들이켰으며, 이어 그에게 확신을 구하듯 눈을 깜박였다.


“음, 확실히 제 「이름」은 「신카이 카나타」가 맞아요. 「그 때」의 해일 이후로 신앙이 줄어들어서 하카제 가문에게 직접 모습을 보이기는 「조금」 힘들어졌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말을 덧붙이며 뿌듯한 듯 웃어 보인 카나타는 카오루가 느끼기 시작한 미묘한 양의 공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게 거리낌 없이 바싹 다가가며 물빛 눈동자를 빛내었다.


“카오루는 제가 찾고 있던 「계약」의 사람이랍니다. 분명 그 계약의 내용은 저를 불 수 있는 「아이」가 나타나면, 가문의 사무(師巫)로 삼는 것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가 「소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희미한 냉기가 일렁이는 카나타의 주변에서 해안가의 짠 모래가 볕에 타 들어가는 듯한 향이 나는 것을 느낀 카오루는, 퍽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러 생각이 겹겹이 쌓여 정리되지 않은 채 고인 듯한 감각은 그의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보다,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냐? 띄엄띄엄, 카오루가 꺼낸 말에 순간 그에게 다가오기를 멈춘 후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킨 카나타는 방의 가장 넓은 중심부로 몇 번 잽싼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뒤로 돌아 웃었다. …하지만 저를 볼 수 있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집안」의 경사 중 경사일 거에요. 카오루는 신사를 이어받는 게 싫은 건가요?


싫다기보다는, 좀 부담스럽지. 꺼내려 했던 말을 삼키고 다만 조용히 카나타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인 카오루는 제 주변의 기류가 서서히 변하는 것을 감지한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실내로 들어온 이질적이고 맑은 바람 한 줄기와 함께 카나타가 내민 손을, 그는 조심스레 잡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라는 말을 끝으로 신은 밝기 그지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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