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텅 빈 복도를 적당한 속도로 거닐던 신타로는 창문 너머에서 지는 노을에 색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착각을 거듭 머릿속에 떠올렸다. 낡은 팬저마스트는 한참 전에 울리기를 멈추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느긋한 마음 탓이었는지, 주변에 대한 경계가 한결 풀어져 있던 순간 대뜸 먼발치에서 들려 온 이명과도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흠칫 놀랐던 그는 어깨에 매지 않고 한 손에 걸치고만 있던 가방을 떨어뜨렸다. 가방은 바닥에 제 몸을 부딪힌 순간 비현실적인 형태로 활짝 열렸고, 그것을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 보던 그의 손은 거의 무의식적인 태도로 움직이며 바닥으로 흘러내린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썩 달갑지 않다는 양 혀를 한 번, 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킨 그는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며 자신이 왜 이 늦은 시간까지-평소 같았더라면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을 터였다-학교에 남아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다가 양 눈꺼풀을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릿하게 내리고, 이내 올리기를 거듭했다.


분명 아침 일찍부터 아야노가 오늘 방과 후 5시쯤에 꼭 교실로 오라는 부탁 비슷한 것을 했었고, 그 표정이 꽤나 필사적인 듯 보여서 고개를 끄덕였으며, 지금은 도서관에서 잠시 시간을 때우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는 일의 순서를 하릴없이 정리해 본 신타로는 그녀가 번거롭게도 자신을 부른 이유를 짐작해 보려 했으나,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책으로 읽어 습득한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해 볼 때의 기분과 엇비슷한 생소함이 느껴지는 듯싶었다.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로 보아 온 교실의 문을 눈앞에 두고 한숨을 한 번 내쉰 신타로의 손은 천천히 교실의 미닫이문을 열어젖혔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순간적으로 들려 온 폭죽 소리가 귀에 닿자마자 에, 하는 싱거운 신음소리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었던 그는 잠시 교실 문 앞에서 멀뚱히 서 있다가 뒤이어 아야노가 꺼낸 생일 축하해, 라는 말에 두 눈을 살짝 크게 떠 보였다. 그는 그때까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자신을 이상하다 여긴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아야노를 가만히 응시했고, 이어서 몇 발자국 앞에 비치는 고동색의 눈동자로 시선을 잠시 옮기었다가 검은 것도 흰 것도 아닌 말을 꺼내었다.


“정말 아무 것도 예측할 수가 없네, 너는…”


*


신타로는 세월에 풍화되어 시도 때도 없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내지르는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자마자 아야노가 저에게 건넨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약간의 붉은 기가 감도는 검은색의 만년필을 보며 딱히 갖고 싶다는 건 아니었는데, 라는 독백을 속으로 곱씹었다. 사흘 전이었던가, 갖고 싶은 게 없다고 대답했음에도 굳이 몇 번이나 말을 되걸며 물건 하나를 꼽아보라던 그녀의 질문을 이상하다고 여겼던 기억이 갑작스럽게 그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각 케이크의 위쪽에 잔뜩 얹혀 있던 크림을 포크의 옆면으로 조심스럽게 걷어 접시의 한 구석으로 치운 신타로는 한참 접시 위를 주시하다가 크림이 거의 사라진 빵의 한 부분을 잘라 입 안으로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푹신한 크림의 질감이 미미하게 남아 있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계속 느릿한 동작으로 접시의 가장자리를 깨작거리는 신타로의 손동작을 빤히 보던 아야노는 신타로, 혹시 케이크 안 좋아해? 라는 물음을 가볍게 던져 보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딱히 케이크가 아니라 단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거니까. 라는 말을 꺼내려던 그는 이내 그것을 그만두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조용한 교실의 뒤편에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유독 증폭되어 들리는 듯했다.


“아, 그런데 아까 폭죽 터트렸을 때 신타로는 ‘이게 무슨 상황이야’라는 표정이었지? 설마 생일을 까먹었을…리는 없겠구나.”

질문으로 시작했던 문장의 맨 끝에서 스스로 답을 얼버무린 아야노는 특유의 가벼운 기색을 가진 웃음소리를 조용히 내어 보였다. 한참 머리를 굴려 그녀의 말에 대한 적당한 대꾸를 생각하려던 신타로는 한숨을 내쉬고 재차 고개를 젓기에는 질문의 의미가 너무도 구체적이었다 판단해 별다른 생각 없이 말문을 열었다.


“이미 태어난 이후로 몇 번씩이나 축하 받았고…굳이 매년 축하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못 느껴서 별로 챙기지도 않고 넘어간 적, 많았으니까. 애초에 너도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신타로는 본의 아니게 다소 쌀쌀맞은 어투로 흘러나온 말을 꺼낸 이후에도 잔소리 같은 말 몇 마디를 더 덧붙이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야노가 아주 가끔씩 보이던, 어딘가 침울해 보이는 표정을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제 머리를 몇 번 헤집다가 희미한 숨을 내쉬며 방금까지의 말을 정정하듯 목구멍 뒤에서 녹슨 채로 고여있던 말을 꺼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모르겠다. 그냥 축하해 준 건 고맙다고.


평소보다 더딘 속도로 신타로가 한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짚어 보던 아야노는 앞으로 내려온 저의 목도리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다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웃어 보였다.


응, 정말로 생일 축하해!





새카맣게 물든 방의 내부에 익숙해진 제 눈 주변을 한 손으로 문지르던 신타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리와 천으로 덧씌워진 창문을 응시했다. 전원이 종료되지 않은 모니터의 액정에 표시된 시간-어느새 막 자정을 넘긴 참이었다-을 얼어붙은 시선으로 쳐다보던 그는 문득 오늘의 날짜를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책상 위에 소품처럼 놓여 있던 달력의 한 부분에 뚫어져라 시선을 고정하기 시작했던 그의 속에서부터 끓어 오른 웃음소리는 이내 허공으로 새어 나왔고, 그것은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여느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흐느낌으로 변모했다.


축하 같은 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제발 돌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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