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은 미적지근했다. 달빛을 머금은 탓인지, 완벽한 흑색으로 물들지 않은 쪽빛 밤하늘 너머에서는 이따금씩 느지막이 눈을 뜬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8월의 완연한 여름이 내비치는 온갖 기척들을 피부로 느끼던 키도는 이마 근처에 자연스레 배어 있던 땀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눌렀다. 땀의 수분이 식어가는 감촉은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싸늘함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키도의 방은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했다는 듯 어질러져 있었다. 바닥에 불규칙한 배열로 놓여진 서랍장과 펼쳐진 옷가지며 잡동사니, 낡은 상자들이 빽빽이 들어찬 마룻바닥을 눈으로 한 번, 느긋하게 훑은 키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씁쓸함이 고인 표정을 지었다. 책상 위에 양손을 올려 지탱한 채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그녀는 작게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다소 황급한 기색으로 기울이고 있던 몸을 세웠다.


“우와, 도둑이라도 다녀간 거야? 방이 엉망이네…”

방의 너머에서 몇 초간 뜸을 들이다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문을 열었던 카노는 난장판이 되어 있는 방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곳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 생각하니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뭐, 그런 거다. 키도는 방이 엉망이라는 그의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은 채로 변명과도 엇비슷한 말을 띄엄띄엄 입 밖으로 내었다. 마지막으로 하는 정리, 는 충분히 키도가 할 법한 마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까지 펼쳐놓은 건 처음이지. 분명? 발을 디딜 틈을 찾아가며 다소 경직된 기색으로 움직이다가 아무런 물건도 올려지지 않은 침대에 털썩 걸터앉은 카노가 꺼낸 말에, 키도는 저의 기억을 되짚으려는 듯 시선을 위로 올리다가 이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정말 내가 했던 말대로 ‘내일이 되면 완전히 잊어버린다’라는 결말이었다니. 차라리 여기가 현실이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을 텐데 말이야.”

응, 그것도 나쁘지 않다만. 카노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덧붙이듯 말을 중얼거림과 동시에 자신의 근처에 있는 서랍에서 몇 개의 물건을 빼낸 후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 둔 키도는 엷은 한숨을 내쉬며 재차 책상에 몸을 기대었다.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양 어중간하게 서 있던 키도는 목 언저리로 내려온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반쯤 숙이고 있던 고개를 갑작스럽게 들어올렸고, 그 때문에 줄곧 자신을 보고 있던 카노와 일직선으로 시선이 마주쳤으나 굳이 그것을 피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녀는 혀끝에 남아있던 침이 바싹 마르는 듯한 감각을 목구멍 너머로 겨우겨우 삼켰다. 그녀가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져 있는 말을 꺼낼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막 무언으로 입을 열어 공기를 입 속에 모았을 때, 카노는 그것을 끊어내듯 말문을 열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으려나. 속으로 이런저런 잡념을 곱씹다가 말하기를 단념한 듯 한결 풀어진 눈동자를 바닥으로 내리깐 키도의 손가락은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기를 거듭했다.


키도는 지금까지 즐거웠어? 모두를 만났던 일이라던가, 그런 것들. 어딘가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제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가늘게 뜨며 카노가 꺼낸 말의 의미를 머릿속에서 곱씹던 키도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꼿꼿이 들어 보였다. 즐거웠지, 꿈을 꾸고 있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어. 그래서, 그래서 슈우야를 만났던 일까지 잊게 되어버린다는 건 지금까지 즐거웠던 것 이상으로 절망스러워.


…이번에는 내가 물어볼게. 정말 우리가 모든 것을 잊어버려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카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며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낸 키도는 눈가에서 금세 방울져 떨어질 양 흔들리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답지 않게 왜 그런 뻔한 걸 물어보는 거야? 오늘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잊어버린다 해도……조금 막연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키도를 찾아낼 거야.”

짧은 말-대답-을 마친 카노는 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키도의 등을 천천히 토닥거리기 시작했고, 키도는 시야에 가득 들어찬 방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물기 어린 눈을 깜박였다. 줄곧 불어오던 바람을 맞아 차가워져 있던 등 근처에 온기가 닿으며 퍼지는 것이 느껴지는 듯싶었다. 응, 이제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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