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제 카오루는 온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다는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그는 평소와 달리 맨 위의 단추까지 채운 셔츠와 목에 걸린 넥타이가 숨통을 막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에 연신 셔츠의 칼라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누군가가 저에게 한 마디라도 더 말을 걸면 당장이라도 먹은 것을 토해낼 것 같다는 감각에 휩쓸린 그는, 필사적으로 조용한 장소를 찾으려 눈동자를 굴렸다. 어른들의 기척으로 가득 찬 공간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누군가의 시야에 들지 않을 법한 기척으로 천천히, 바닥을 향해 쪼그려 앉은 카오루는 제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건조했던 시야가 차차 선명해졌고, 정면에서 보이는 것들이라곤 이따금씩 움직이는 사람들의 다리뿐이었다. 줄곧 이유 없이 뒤집어져 있던 속은 한결 나아진 듯싶었다. 안도가 섞인 숨을 가볍게 내쉬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던 그는 유난히 긴 식탁보가 드리워진 테이블 근처로 조심스레 다가가다가, 빠르게 천을 젖히고 그 너머로 숨었다.

일렁이던 소음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줄어든, 바깥과 단절된 듯한 테이블의 아래에서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찾은 후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카오루는 저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다가 어딘가에서 천이 나풀거리며 갑작스레 들이친 먼지에 기침을 내뱉었다. 그래도, 여기라면 아무도 못 찾겠지. 그는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독백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괜한 호기심에 저의 손끝에 감기는 식탁보의 끝자락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던 카오루는 이따금씩 어두운 공간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에 부신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어두운 저의 주변에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던 그는 다시 한 번 식탁보를 집으려 손을 뻗었으나, 누군가가 저의 입을 틀어막는 감각에 손목에 들어갔던 힘을 곧바로 풀었다. 폐부로 들어가는 공기가 서서히 줄어드는 듯한 감각에 몸을 뒤틀어 테이블 밖으로 빠져나가려던 그는 순간 저의 눈앞을 채운 사람의 형체에 헉, 하고 엷은 숨을 삼키었다.

“…조금만 「조용히」해 주시겠어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저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 카오루는 천천히 목구멍 끝에 고여있던 숨을 마저 내뱉었다. 어느새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며, 주변의 풍경이 맑게 보이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희미한 경계가 서린,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말을 꺼낸 사람의 모습을 한참 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것과 엇비슷한 디자인의 정장과 그늘이 드리워져 어둡게 보이는 듯한, 푸른색의 머리카락. 한쪽 뺨을 작게 부풀린 채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그 역시 카오루의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듯싶었다.

저기, 왜 이런 곳에 숨어 있는 거야? 행여 누군가에게 목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레 희미한 음성으로 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던 카오루는, 시간이 지나도록 들려오지 않는 대답을 애써 개의치 않는척하며 양 무릎을 팔로 끌어안았다. 파티는 무척이나 「지루」하고 시끄러우니까요. 구겨진 식탁보의 틈새로 안개처럼 밀려오는 빛을 반사하며 색이 밝아지기 시작한 눈동자를 카오루가 자리한 방향으로 돌린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건 나랑 같을지도…나는 하카제 카오루, 라고 하는데. 이름이 뭐야?”
한결 풀어진 시선으로 저에게 이름을 물은 카오루를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던 그는 자신의 앞머리를 몇 번 쓸다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하카제」라면, 분명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집안의 「이름」이네요…’신카이 카나타’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려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제 앞으로 오른손을 내민 카나타의 담담한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며 꽤나 엄격한 집안일까, 라는 추측을 머릿속으로 그렸던 카오루는 다소 어설프게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았다.


짧았던 그 만남이 인연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소년이 알아차리는 건,

조금 뒤의 일.

저택 한구석의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저의 형체를 부서뜨리며 들어오던 햇빛은 어째서인지 엷은 물빛을 띠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빛의 더미가 바람에 흩날리는 반투명한 커튼 탓에 가로막혔다가, 다시 방의 마룻바닥을 비추는 것을 눈동자로 좆던 카오루는 일순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은 감각에 반사적인 태도로 목 근처에 가져간 손을 움찔대었다. 그것은 공포와는 거리가 먼 박탈감이었고, 이렇다 할 단어로 칭하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운 것이었다-또는 그가 상황과 적당한 표현을 알지 못했거나-.

자신이 늘 익숙하게 보아 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의 집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형태를 이후에도 머릿속에 새기려는 양 꼼꼼히 둘러보던 카오루는 마지막으로 한 번. 구름 너머로 가려져 흐릿하게만 보이는 햇빛의 자국을 쳐다보곤 잿빛 그늘이 진 방의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사람이 쓰기에는 지독히도 넓은 방은 불필요한 물건 따위를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깔끔했다. 그 탓에 공간은 더욱 공허해 보였다. 그가 원하던 곳에 자리를 잡은 것과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미미하게 더러워진 제 바지에 대한 불호령을 언제쯤 듣게 될 것인지를 어림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카나타는 그때까지도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꼭 저의 약지만한 두께를 가진 양장(洋裝)을 바닥에 펼친 상태로 읽고 있었다. 자신이 옆에 바싹 다가와 붙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푹 숙인 고개를 들지 않은 그를, 카오루는 빤히 응시했다. 도톰한 책장이 종종 넘겨지는 소리, 그 새에 스며든 카나타의 숨소리가 그의 귓전에 흘러 들었다. 그는 그늘 속에서 빛을 머금지 않아 쪽빛과도 같이 시야에 비치는 카나타의 풍성한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고, 그러다가 문득. 테이블 아래에서 처음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마른 눈을 깜박였다.

“저기, 카나타. 아까부터 그거 계속 읽고 있던데. 무슨 책이야?”
수중에 가라앉아 있던 의식이 순간 돌아왔다는 듯 엎드리고 있던 몸을 반쯤 위로 치켜 올린 카나타는 가만가만 고개를 들어 카오루의 눈동자 너머를 응시하다 선명한 눈웃음을 지었다. 「해양생물도감」이랍니다. 마침 가장 즐거운 부분을 읽던 참이었어요…♪ 속삭이는 듯한 어조로 꺼낸 말을 끝으로 다시 입을 다문 후 시선을 내리깐 그는 손목을 가볍게 움직여 제 고개 아래에 자리하고 있던 책을 카오루가 있는 방향으로 살짝, 밀었다. 카오루는 몸을 숙여 바닥에 완전히 엎드린 채 저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 책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남색을 띤 어두운 배경의 사진 한가운데에서 확연하게 빛나고 있는 해파리와 그 아래에 새겨진 활자를 번갈아 보던 그는 천천히 텅 빈 허공으로 시선을 틀어 보였고, 자신의 무의식 근처를 줄곧 떠돌던 생각을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법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숨이 막히는 것만 같던 감각은 그의 근처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지만.

들어오는 빛도, 분위기도. 꼭 바닷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저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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