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메원더 기반 아메아포





아메, 무슨 일이에요…?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아메 서머터지의 귓전에 닿았고, 그는 시선을 뒤편으로 살짝 돌려 제 뒤로 끌리듯 따라오는 원더러를 보았다. 그가 움킨 손목에는 저항하려는 듯한 힘이 티조차 나지 않는 미미한 양으로 들어가 있었다. 신전 밖의 하늘은 어두웠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성싶었다.


벽을 타고 올라 울려 퍼지는 소리라고는 흐릿하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발자국의 기척이 전부인 신전의 내부는 평소와는 달리 안정되지 않고 일그러진 기색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움직임이 다른 발걸음 두 개가 자아내는 박자는 불규칙하기 그지없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밟아가며 신전의 깊고 낮은 곳으로 향할수록 원더러의 움직임은 느려졌고, 아메 서머터지는 그것에 신경을 기울일 여지조차 없다는 듯 가차 없이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따금 새어 나오는 밭은 숨이 허공의 빈 곳을 채우고 이내 사그라지기를 거듭했다.


신전 지하의 촛불들은 넓은 간격으로 배치된 채 벽에 고정된 촛대 위를 지키고 있었으며, 그 하나하나가 밝히는 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느릿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천둥의 기척이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자신의 이름을 담은 채 토막토막 잘리던, 불안한 말소리가 귓전에 닿자마자 아메 서머터지는 바로 제 근처에 있던 방 하나의 문을 열었다.


존재하는 빛이라고는 얇은 촛불 하나가 전부였던 방의 내부는 눈에 띄게 어두웠다. 침대 위의 흐트러진 모포는 누군가가 조금 전까지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아메 서머터지는 방 한가운데에 넘어져 있던 의자를 세워 그곳에 원더러를 앉혔고, 폐허와도 같은 방을 잠시 둘러보다가 제 몸 둘 바를 모르고 그저 앉아 숨을 가다듬고 있던 그에게 가만히 시선을 맞추었다. 후드 뒤로 가려진 머리카락은 땋은 것의 매듭이 풀려 윗부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형체가 뒤틀려 있었고, 몸 군데군데를 가리고 있던 붕대 역시 죄 풀려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기에 손등 같은 곳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던 오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원더러는 사라진 붕대 너머로 드러난 제 한쪽 눈동자의 끊임없는 일렁임을 그가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양, 고개를 기울였다. 아메, 미안, 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쥐어짜듯 꺼낸 말에 별다른 대꾸가 들려오지 않자, 그는 조심스레 숙이고 있던 제 고개를 다시 들어 눈앞에 자리한 이의 표정을 살핀 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우물쭈물, 망설이다 재차 입을 열어 보이려는 순간 선수를 친 아메 서머터지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욱 싸늘하게 벼려져 있었다. 언제까지 흉내 낼 셈이에요?


아메 서머터지는 짧은 순간에 신의 검을 투영해 그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대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양의 절망을 마주한 사람이 보일 법한, 공허한 표정을 지어 보였던 그는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흥미롭군, 아메 서머터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습과 태도가 똑같더라도, 한 층 불결해진 그 혼돈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당신의 사고방식이 더 놀라운데요. 저의 혼잣말에 따라붙은 대답에 반응한 듯, 아포스타시아의 무표정이 살짝 경련했다. 조롱의 기색이 깔린 헛웃음인 듯싶었다. 어느새 그의 머리칼은 완전히 풀어져 허공을 나돌아다니고 있었다. 감히 제 발로 멀쩡히 나갈 수 없으리라는 각오쯤은 하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겠죠. 그는 검을 그의 목덜미에서 거두지 않은 채로 아메 서머터지가 꺼낸 말에 글쎄, 어떨까. 라는 막연한 중얼거림을 입 밖으로 내었다. 그는 이제 거의 자신의 피부를 스치려 하는 검을 피하려는 것처럼 몸을 뒤로 빼며 웅크렸다. 그리고-


“아메, 무서워요.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여신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혼돈에 의해 허공 밖으로 내어진 익숙하고도 가느다란 목소리에, 아메 서머터지의 표정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눈앞에 자리한 것은 분명 그에게 있어 익숙하기 그지없는 형체를 하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고는, 얼핏 봐서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희미하게 그것에게 드리워진 웃음기뿐이었다. 왜 나는 저 허울을 보고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 그는 자신의 주저를 작게 비웃고 있는 듯한 아포스타시아의 무덤덤한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속에서 줄곧 일렁이던 차갑고 뜨거운 것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메 서머터지는 아포스타시아가 쓰고 있던 후드를 한 손으로 잡아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그의 깨어진 뺨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천 자락이 서로 스치며 만들어낸 바람에 촛불은 한 번, 아슬아슬한 모양새로 흔들렸다. 동요하고 있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뿌연 목소리가 기류 속을 파고들기도 전에 허공에 향한 채로 쥐고 있던 검을 재차 아포스타시아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래요, 동요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게 된 그 표정을 보니 비로소 마음 놓고 너를 심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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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AU

* 선동과 날조



문득 뇌리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줄곧 일렁이고 있던 정신을 부여잡은 에브루헨 아모치온은 어딘지도 모를, 넓게 펼쳐진 무대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시야가 아득해질 만큼 높다란 곳에까지 구석구석 배치된 붉은 빛이 감도는 좌석-모두 텅 비어 있었다-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성대한 음악 소리가 자아낸 분위기, 풍경에 그는 이유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비치는 조명은 미적지근한 온도를 머금은 채 부서지고 있었고, 그 사이를 배회하고 있는 미세한 먼지의 파편이 눈에 선했다.


에브루헨은 자연스레 제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목소리로 익숙한 가사를 읊으며 노래했다. 그는 평소보다도 더욱 수월하게 혀끝을 떠나가는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다가, 속에서 흘러나온 잡념 탓에 흐트러지고 있던 자세를 제대로 고쳐 잡았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노래하고 있음에도 관객이 없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따위의 것들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맑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빛과 율조에 완전히 적응해 약간의 여유가 생김을 감지한 그는 재차 텅 비어 있던 객석들을 훑어보다가 그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형체에 시선을 가만히 멈추었다. 그의 눈은 미묘하게 이지러지는 듯한 형체의 움직임 탓에 가늘게 찌푸려지기를 거듭했다. 형체는 전체적으로 새카맣다는 느낌을 주는, 잿빛 머리칼을 허리 너머까지 기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떠올린 찰나 그것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동요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던 에브루헨은 이윽고 코앞에 나타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누군가의 눈동자가 가진 짙음에 목소리와 숨을 동시에 멈추었다. 여백을 채우고 있던 모든 선율이 일제히 사라졌다. 탁한 녹색의 뒤편,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이 비쳐 보였다.


저쪽 세계에서는 두 번 다시 낼 수 없는 목소리겠지. 어째서인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하게 주는, 낮은 목소리가 그의 귓전에 닿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내면을 채우기 시작한 위화감과 막연한 공포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이내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존재의 모습을 확연하게 눈에 담았다.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진득하게 따라붙는 시선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자신에게 다가오지는 않는 존재를 보며 천천히 안심하던 에브루헨이 엷은 숨을 내쉬려던 찰나 그는 무언가에 떠밀려 낙하하는 듯한,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발끝이 아릿했다. 탁한 음성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이곳에서라면 영원히 가질 수 있을 텐데.


*


에브루헨은 가느다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몸을 반쯤 일으켜 고여 있던 숨을 뱉어내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피로감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채였고, 유리창 너머의 하늘 또한 밝아지려는 기색 없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악몽의 여파인지, 몇 가지 일들이 순간적으로 그가 가진 기억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혼자 있던 집에서 돌연 느낀 인기척, 지인에게서 걸려왔던 전화가 받자마자 끊어졌으며 훗날 물어보니 당사자는 건 적이 없다고 했던 것, 허구한 날 물건이 넘어지고 더 나아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멈추어 선 차에 부딪힐 뻔했던 사고까지.


모든 불운은 부자연스러우리만치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여태껏 일상을 좀먹던 불길함이 하나의 실체로 변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듯한 감각에 흠칫 몸을 떨었다.


에브루헨의 심연 속에서 무언가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하루가 멀다고 나타나 그가 사흘 내리 밤잠을 설치게 했던, 썩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오래전에 끊어진 반주,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허공으로 한 박자 일찍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 날숨, 정적, 형체만 간신히 보일 만큼 먼발치에 붙여져 있던 포스터. 그는 무심코 손을 올려 제 귀를 막았다. 사라지지 않는 이명이 기류를 곧게 뒤틀었다. 그만, 그만, 그만. 중얼거리던 그는 단숨에 격앙된 제 숨을 불규칙적으로 내쉬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 소리는 유난히 스산하게만 느껴졌다. 호흡을 고른 그는 넌더리가 난다는 양, 텅 빈 웃음을 입 밖으로 내었다. 진짜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악신을 붙여 온 건가요. 에브루헨은 노기와 희끄무레한 우려가 한데 뒤섞인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메 서머터지의 앞에서 쭈뼛쭈뼛, 제 몫의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술에 닿은 음료의 감각이 미묘했다. 아메 서머터지는 대답 대신 저를 향해 양어깨를 한 번 들었다 내려 보인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퍽 불만스러운 것이 있다는 것처럼 단정히 차려입은 수단의 목 언저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 주변을 채우기 시작한 정적에 숨이 막힌 듯, 에브루헨은 저의 고개를 외로 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살면서 뭔가 크게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왜 하필 나일까요…


사람이 음식을 가리듯 신도 사람을 가리니까요. 의도치 않게 구미에 맞아버린 거겠죠. 그보다 너,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요? 천천히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몰아붙이는 듯한 어조를 띤 아메 서머터지의 대답에, 그는 풀이 죽은 양 창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메가 괜히 나 때문에 휘말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뭐, 그래도 도와줄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아메 서머터지는 수 분 전보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가 제 귓전에 닿았음에도 달리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을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표정 자체에 드리워진 그림자, 잠긴 음성, 전체적으로 야윈 몸. 그런 식으로 에브루헨을 좀먹고 있는 존재가, 그의 눈에는 완연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에브루헨의 머리맡 근처에 부유한 형체를 뚫어지라 쏘아보았고, 돌연 속에서 피어오른 원망과 울화를 눌러 삼켰다.


오랜만이구나, 현인신(現人神). 아포스타시아의 음성은 자신을 날 선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 이의 기색과는 반대로 평온하고도 담담했다. 아메 서머터지는 그런 그에게 닿아 있던 시선을 거둔 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손대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의 개입을 벗어난 그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고, 혼돈은 그것에 담긴 의미를 비웃듯 짧은 날숨을 쉬었다. 글쎄, 이것은 엄연히 관리를 소홀히 한 네 불찰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이번에야말로 완벽히 배제할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에브루헨. 불결하기 짝이 없는 악신의 대꾸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던 그는, 주의를 다시 현실로 돌려 저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에브루헨에게 천천히 말을 걸었다. 말마디 사이사이에 희미한 독기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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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이 세습된다는 설정의 센티넬버스 AU



둔중한 물체가 벽에 부딪히며 자아낸 듯한 먼발치의 굉음이 돌연 대기를 뒤흔들고는 사라졌다. 짧은 탄식과 끊어지는 비명은 물론이며 구원을 바라는 양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질서 없이 뒤엉킨 그것들이 귓전을 울려댄 탓에 아메 서머터지의 표정은 티가 날 듯 말 듯 희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황혼을 머금어 유난히 길게만 보이는 저택의 복도를 기척 없이 가로지르며 제 눈을 지긋하게 감고 뜨기를 거듭했다. 그 형체가 견고해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던, 출처가 불분명한 소음과 진동은 그가 발걸음을 앞으로 옮길수록 빠르고 강해지는 듯했다. 주변의 기류를 가득 채운 불안과 동요를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지, 그의 움직임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일 없이 일정했다. 몇 걸음 앞에서 부서진 문의 잔해가 보이기 시작한 참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시절-십 대의 초반 언저리였을 터였다-부터 아메 서머터지는 아포스타시아의 곁에 있었다. 핏줄기를 타고 내려오며 제각기 다른 형태로 이어진, 기이하기 짝이 없는 능력으로 권력과 부의 정점에 선 가문과 그들이 가진 능력의 때아닌 폭주를 제어하고 가라앉히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또 다른 고위 가문의 공존. 조합의 목적과 이익은 명료하고 깔끔했으며, 그 이상적인 형태의 상관관계가 두 사람에게까지 내려왔을 때 이미 모든 것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을 만큼 당연한 법칙이 되어 있었다.


아메 서머터지의 뇌리에는 유년 시절부터 줄곧 어른들의 등 너머로 보아 왔던 자신의 가문과 그 지위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자신이 막 책을 손에 쥐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행해지기 시작한 가문 내의 엄격한 교육에 별다른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 ‘안내자’로서의 역할은 곧 가업이었으며, 그것은 장차 당주가 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저택에 발을 들인 첫날, 훤히 드러나 있던 제 손 위에 흰 장갑을 덧대어 주며 사용인이 당부했던 말을 아메 서머터지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제어가 불가능에 가까워, 곁을 지키던 가이드들-나이가 비슷한 저의 친척들이었다-이 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을 만큼 험한 능력과 쉽게 맞출 수 없는 성격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그 가문의 직속 후계자를 맡게 되었다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서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여태껏 후계자들을 붙여놓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례적인 일이네요. 덧붙이듯 들려온 사용인의 목소리는 저택의 내부에서 벌어진 소란의 조짐에 묻혀 나오는 족족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는 줄곧 등지고 있던 저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람 몇몇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양 다급한 기색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쪽 벽면을 통째로 채운 세공 유리창 너머의 햇빛이 가득 들어와 산산이 부서져 아름답기 그지없던 방의 구석,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처럼 구석으로 몸을 욱여 넣어 숨긴 채 벽 너머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이의 형체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메 서머터지는 제 고개를 희미하게 외로 꼬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일단 얕잡아 보며, 천성의 오만함을 어떻게 해도 숨기지 못한다는. 그가 교육을 받던 내내 들어왔던 묘사와는 너무도 다르게-거의 정반대로-보이는 이가 그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게 센티넬이라고.


아포스타시아의 주변에는 새카맣고 자잘한 것들이 무작위로 부유한 채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원의 양 끝을 잡고 길게 늘여 만들어낸 듯한 틈새의 가장자리부터 그 중심을 향해 선명한 채도의 갈래가 핏줄처럼 퍼지고 있는 듯한 풍채를 보이고 있었다. 끊임없이 부서지고 되살아나며, 요동치기를 거듭하는 것들을 주시하던 아메 서머터지는, 자연스레 그것이 사람의 안구를 닮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무런 제지 없이 다만 허공에 퍼진 균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늙은 사용인은 이미 몇 번이나 가이드를 바꾸셨음에도 제어가 되지 않으셔서…라는 모호한 말을 꺼내었고 의도였든 아니었든 그것은 그에게 은근한 재촉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 익숙하기 그지없는 제어의 순서를 재차 되새긴 뒤 제 앞의 혼탁한 그늘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딘 아메 서머터지는 천천히, 오른손을 감싸고 있던 장갑을 빼내었다. 그는 아포스타시아의 머리 위에 손을 살짝 올렸다가, 서서히 아래로 내리며 그것이 쇄골 언저리에 머무르도록 했다. 공간의 파편을 가득 채운 혼돈의 주인은 무방비 상태에서 제게 닿은 사람의 감촉에 순간 놀란 듯 했으나 그것에 크게 동요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접촉한 손을 떼지 않은 채 곁눈질로 비스듬한 옆쪽을 바라본 아메 서머터지의 시야에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식의 체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용인이 들어왔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이드의 자격을 가진 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저 사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기가 한순간 밀려와 자신의 속내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제자리에서 눈을 몇 번 깜박이다 제 앞에 있는 이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도록 무릎을 꿇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는 약한 숨을 들이켰다.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야 했을 그림자들이 한데 뭉쳐져 머무르고 있는 듯한 눈동자의 짙은 어둠이 무척이나 이질적이었기에.


늘어뜨려진 아포스타시아의 머리칼 속에 가려져 있던 표정은 찌푸려진 것도, 우는 것도 아니었다. 무(無)에 가까운 감정만이 실린 그의 기색을 잠시 살피던 아메 서머터지는 천천히 그에게 입술을 맞대었다. 제 것만큼 차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곧 상공을 배회하던, 일그러진 것들이 하나 둘 모습을 감추는 것이 희미한 바람으로 인해 피부에 다가와 느껴졌다.


아메 서머터지는 맞닿아 있던 입을 떼고 몸을 일으킨 뒤 아포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불규칙하던 호흡이 안정되어 있었다. 어두운 시선이 재차 그의 눈동자에 닿았고, 그것은 방금 전보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일말의 흔들림 없이 잔잔해져 있었다. 아, 나는 평생 이것의 곁에 붙어 있겠구나. 제 눈앞의 풍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는 문득 그런 예감 비슷한 것을 떠올렸다.


* * *


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유리창이 조각났고, 꽃병이나 촛대 등 깨진 것들의 온갖 잔해와 함께 뒹굴며 섞인 천 자락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등 뒤의 기척을 느낀 것이었는지, 아포스타시아는 제 앞에 있던 커튼을 무심코 움켰다. 제 딴에는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버텨낼 요량으로 그런 행동을 한 듯싶었으나,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커튼은 무용하게도 그것을 매달고 있는 봉째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메 서머터지. 그는 힘이 제 딴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특유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를 쏘아보고 있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끝까지 도와달라는 말만큼은 꺼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그대로 입을 다문 후 무언가를 암시하듯 고개를 반쯤 비틀어 아메 서머터지를 바라보았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퍽 위태로워 보였다.


말해봐요. 내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지. 아메 서머터지의 가시 돋친 질책을 끝으로 폐허가 된 방에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고, 그는 빠른 걸음으로 아포스타시아에게 다가갔다. 땀에 젖어 목덜미에 엉겨 붙은 머리칼의 갈래가 눈에 선했다. 급한 일이 있어 네 곁에 있어줄 수 없으니 부득이하게 오늘은 약을 먹으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요. 내가 너에게만 온 신경을 쏟을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포스타시아가 정신이 없어 말소리가 들릴 턱이 없다는 양 내쉬던 불만스러운 기색의 숨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되려 점점 가빠졌다. 이제 완전히 주저앉은 그의 발 아래에 머무르고 있던 눈은 점차 그 크기를 불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명문이라며 추앙 받는 곳의 당주들이 죄다 이런 꼴이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참 놀라겠어요. 아포스타시아는 표정 하나 바뀌는 기색 없이 저를 비꼬며 시선을 마주한 아메 서머터지에게 매달리듯 다가가 스스로 혀를 뒤얽었고, 이내 가빠졌던 제 숨소리가 차차 잦아들자 언제 그랬냐는 양 몸을 뒤로 빼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쉬려는 듯 고개를 숙인 그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아메 서머터지는 언제쯤 이것은 내가 없이도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될까, 하는 어렴풋한 한탄을 속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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